성공회 신학 - 전례 포럼 » 번역 프로젝트 자료

  1. Cranmer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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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성찬례 신학(Holy Communion)
    William R. Crockett

    잉글랜드 종교개혁은 시작때에 신앙적[종교적] 개혁보다는 정치적인 개혁이었다. 마침내 신앙개혁을 시작하였을 때, 교리적인 형태보다는 먼저 전례적인 형태로 나타났다. 1549년에 최초의 기도서가 발행되었다. 이 기도서의 중심적인 저자는 토머스 크랜머 대주교였다. 성찬례 양식의 경우, 순서와 구조만을 따진다면, 이 기도서는 전통적인 로마 미사의 순서와 구조를 거의 그대로 채택한 타협적인[절반의] 조치였다. 옛[기존] 미사양식의 교리에 관한 가장 중요한 개혁은 미사의 축성경(canon)(축성기도Prayer of Consecration 또는 성찬기도Eucharistic Prayer라고도 한다)에 대한 개정에서 나타난다. 개정된 성찬기도는 옛 축성경의 구조를 그대로 따르면서도, 신학적으로 그리스도가 ‘단 한번 봉헌한’ 십자가의 희생을 분명하게 강조하였다. 십자가의 희생에 대한 기념[기억], 찬양과 감사의 희생, 또는 ‘우리자신인 우리들의 영혼과 몸’[자신의 몸과 영혼-2004기도서-역자]의 희생을 의미하는 것 이외에 미사를 하나의 희생[제의, 제물]으로 언급하는 말들을 모두[깨끗하게] 삭제하였다. 따라서 전체 기도문[성찬기도문]은 초기교회의 성찬기도들과 일치하여 보다 분명하게 감사의 주제를 향하도록 전환되었다. 아남네시스(anamnesis,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기억memorial)는 중앙의 중심부에 복원하였으며, 그리고 영성체에서 이를 배수하는 입장[성찬배수라는 입장]에서 선물들에 대하여 말씀[제정의 말씀]과 성령에 기원[청원]하는 에피클레시스(epiclesis, 성령임재기도)를 도입하였다.

    1552년에 기도서의 개정판이 발행되었다. 1552년의 성찬기도 양식은 1549년보다 더 과감하게 옛 미사의 축성경을 개정하였다. 크랜머의 1549년 축성경은 세가지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첫번째 부분은 로마 축성경을 개작한 중보기도와 기념례들을 포함하며, 두번째 부분은 구원(redemption)에 대한 감사, 에피클레시스, 그리고 제정의 말씀[제정사]으로 구성되었으며, 세번째 부분은 아남네시스와 ‘우리 자신인 우리들의 영혼과 몸’의 봉헌을 포함하며, 송영으로 끝맺는다. 크랜머는 1552년 개정양식에서 첫번째 부분을 예배의 앞부분 즉, 봉헌례 직후로 이동시켰다. 세번째 부분은 영성체후 기도들중 하나로 변경시켰다. 중간부분(두번째 부분)에서 에피클레시스를 삭제함으로써, 이제 남은 1552년 성찬기도는 구원에 대한 감사와 제정의 말씀이었다. 바로 이 직후에 성찬을 분배하며, 성찬집행문[배찬사]은 다음과 같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위하여 죽으셨음을 기억하며 이를 받아 먹어라. 그리고 믿음으로 감사하며 당신의 마음 안에서 그 분을 먹어라’, 그리고 ‘그리스도의 피는 당신을 위하여 흘리셨음을 기억하며 이를 마시며 감사하라.’ 이러한 변화들에 대한 이유는 여전히 논쟁적인 질문이다.

    성공회신앙은 단 하나의 위대한 종교개혁가나 공동의 신앙고백문의 독특한 특징을 담은 성찬례교리를 결코 발전시키지 않았다. 오히려 잉글랜드교회 신앙정책(Anglican Settlement)의 넓은 틀(framework) 안에서 다양한 교리적인 의견들[입장들]이 형성되었으며, 이를 로마교회와 대륙의 종교개혁 교회들(Reformed Churches) 사이의 비아 메디아(via media)로 표현되었다. 비아 메디아는 성서, 초기교회, 이성 그리고 경험에 근거하였으며, 곧이어 잉글랜드교회 에토스(ethos, 기풍, 정신)의 특징이 되었다. 크랜머는 성찬례교리를 성찬요소들[빵과 포도주-역자]의 본질에서 발생하는 변화를 중심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영성체[성찬배수] 행동을 중심으로 재조정하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중세기의 지배적인 전통과 결별하고, 성 어거스틴과 스위스 종교개혁가들에 더욱 가까운 입장을 채택하였다. 아마도 그의 교리를 가장 잘 설명한다면, 성찬례에서 그리스도의 실재적이며 객관적(real objective) 현존의[실재적으로 객관적으로 현존한다는] 교리보다는, 성찬례에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실재적으로(real) 먹는다는(partaker) 교리이다. 즉, 성사적 증표들(signs-빵과 포도주-역자)은 객관적인 방식이 아니라, 증표들의 사용을 통해서 증표들이 전달하는 실재(reality)와 연결[결합]된다. 이러한 입장[관점]은 성찬요소들[빵과 포도주-역자]과의 관련시키는 것이 아니라, 신실한 신자와 관련된 성사적 실재론(실체론realism)을 보존하려는 시도를 나타낸다. 즉,

    ‘그리고, 그러므로 성찬례 책[예식서]에서 우리는 정말로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도록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이 거룩한 신비에서[성찬례에서-역자] 그것들이[빵과 포도주가] 우리들에게[우리들이 먹을 때-역자] 그렇게[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도록 기도한다. 다시 말한다면, 우리가 가치있게[worthily] 똑같은 것[몸과 피]으로 받을 수 있기를, 우리가 그리도의 몸과 피를 먹는 자가 되도록 기도하며, 그래서 그럼으로써[몸과 피를 먹음으로써-역자] 영혼(spirit)으로나 진리(truth)로 우리는 영성적으로 양육되도록 기도한다.’

    엘리자베스시대 동안에 리처드 후커는 성찬례교리에 접근하는 독특한 성공회적인 신학적 방법론을 발전시켰다. 후커의 교리는 성찬례에서 그리스도의 실재적인 현존(real presence)의 교리라기 보다는, 성찬례에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실재적으로 먹는(real partaking) 교리로 설명할 수 있다. 이러한 성찬례의 교리-이후에 성공회신학의 특징이 되었다-는 종종 ‘배수자 중심의 이해’(신수자주의信受者主義receptionism)라고 말한다. 후커는 실재적인 현존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이것[실재적인 현존]을 성찬요소들인 빵과 포도주과 관련시키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신실한 배수자[성찬참여자]와 관련시킨다. 즉, ‘그리스도의 가장 거룩한 몸과 피의 실재적인 현존은 [...] 성사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성사를 가치있게 받는 자에서 찾아야 한다.’ 그러면 실재적 현존과 성찬요소인 빵과 포도주와의 관계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 그는 의도적으로 불가지론의 입장을 채택한다. 즉,

    ‘그러므로 주님의 식탁으로 나아가는 나에게는, 그리스도께서 그의 약속[제정사-역자]을 실행하는 방법을 찾거나 묻지 않고도, 내가 그곳에서 그 분으로부터 무엇을 받는지를 아는 것으로 충분하다. [...] 이 성찬요소들이 그 자체로 무엇인가는 중요하지 않으며, 나에게는 내가 그것들을 먹을 때에 그것들이 그리스도의 몸과 피인 것으로 충분하다.’

    성찬의 현존방식에 관한 후커의 불가지론은 신앙의 문제들에서 권위의 논점에 대한 독특한 성공회적인 접근방법을 드러낸다. 즉, 성서의 특정한 증언을 넘어서는 어떠한 것도 필수적인 신앙조항으로 제안될 수 없다는 것이 이제 막 형성되고 있는 성공회전통의 최고의 원칙이었다. 성서를 넘어서면, 초기교회와의 일치, 여러가지 그리스도교 신앙고백들과의 일치[동의], 그리고 이성의 증언은 어떤 특정한 교리의 진리를 확언하거나 부인하는데 사용될 수 있는 다음 단계의 시험수단들이다. 이는 결국 성공회 신학에서 필수적인 신앙조항이 되는 교리들과, 신학적인 의견의 영역에 남게두어야 하는 문제들을 구별하게 만들었다. 후커는 여기서 신학과 신앙 사이를 구별하고 있다. 신앙의 차원에서 필수적인 모든 것은 성찬례에서 성사적인 증표들(sacramental signs빵과 포도주)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실재로[정말로] 받는다는 우리의 믿음이다. 신학의 차원에서는 신심을 위태롭하게 하지 않는 한, 현존의 방식에 관하여 추측[사색]하는 것은 정당하다.

    그러면, 후커의 경우, 그리스도의 현존을 가치있는 배수자에게 전달할 때에 성찬요소들의 역할은 무엇인가?[성찬요소들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이 문제를 논의할 때에 후커는 한편으로 ‘츠빙글리주의’(츠빙글리의 이해Zwiglianism)와 다른 한편으로 중세교회의 교리 사이에서 중간입장을 채택하려고 시도하였다. 신의 은총과 성사들과의 관계를 설명할 때에 후커는 아퀴나스처럼 도구적인[이차적인] 인과관계(instrumental causality)의 언어를 사용하였다. 즉, 성사들은 절대적인 의미에서 은총의 원인이 아니다. 하느님만이 은총의 창조자이다. 성사들은 2차적인 또는 도구적인(instrumental) 의미에서만 원인이다. 하느님은 이것[성사]들을 은총을 나누어 주는 수단으로 사용한다. 그러나 은총의 수단으로서 성사들은 그러한 효과를 자동적으로 만들지[생산하지] 못하며, 다만 조건적으로만 가능하다. 성사들은 기계적 또는 물리적인 도구들이 아니라, ‘개연적인 도구들’(moral instruments)이다. 여기서 후커는 성사적 인과관계의 자연주의적인(naturalist) 또는 기계적인 모델보다는 오늘날의 명칭으로 말한다면 ‘personalist’[개별적인 인격주의적인] 모델을 사용하고 있다. 즉, 성사들의 작용은 자유로운 개연적인 동인들(moral agents) 사이에서 선물을 주고 받는 것과 비슷하다. 하느님이 은총을 조건없이(free) 준다는 점에서, 그리고 받는자가 신실하게 응답하여야 한다는 점에서 성사는 조건적이다. 하지만 성사들은 하느님의 약속에 의존한다는 의미에서, [성사에서] 은총의 제공[은총을 주는 것]은 무조건적이다. 그러나 이 선물을 받는 것은 받는자가 자유롭고 신실한 응답을 하여야 한다는 점에서 조건적이다. 성사들은 ‘실재로 보여준다’(really exhibit). 그러나 성사들은 그 자체로 ‘그 안에 하느님이 성사들과 함께 또는 성사들을 통해서 기꺼이 부여하고 싶은 그러한 은총이 아니며, 또한 그러한 은총을 정말로 포함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빵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의 참여가 발생하는 배수(receipt영성체)에 의존하는 원인들(causes)이기 때문에,’ 빵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이다.

    17세기 성공회 신학자들은 특징적으로 성찬례에서 그리스도의 실재적인 현존을 주장하였지만, 후커의 전통을 따라 현존의 방식에 대해서는 불가지론을 고백하였다. ‘배수자 중심의 이해’(Receptionism)는 19세기에 발생한 옥스퍼드운동에 이르기까지 잉글랜드교회 내에서 강조점의 차이는 있었지만 주요한 신학적 입장이었다. 그러나 ‘배수자 중심의 이해’는 실재적인 현존에 관한 하나의 교리이지만, 현존을 빵과 포도주와 관련시키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가치있는 배수자와 관련시킨다는 점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17세기 성공회 신학자들은 전형적인 어거스틴 방식을 따라서 성사의 res(실재)- 성사에 의해서 전달되는 내적이며 영적인 은총 또는 실재(reality)-와 sacramentum[상징]-외적이며 가시적인 증표(sign)로 이를 통해서 은총은 신실한 배수자에게 전달된다-를 구별하였다. 이와동시에 그들은 성찬요소들과 이것들에 의해서 상징되는 실재[몸과 피] 사이의 ‘성사적인 결합’(sacramental union)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 결합은 실재(res)와 상징(sacramentum) 사이의 구별을 파괴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성사의 본질은 항상 두가지 부분, 즉 가시적인 부분과 비가시적인 부분, 지상적인 부분과 천상적인 부분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이 두가지의 구별이 파괴되면 성사는 더이상 성사일 수가 없다. 그러므로 실재(res)와 상징(sacramentum)이 결합되어 있는 동안에, 은총은 분명히 모든 사람들에게 제공되지만, 오직 신실한 배수자만이 [성사의] 외적인 증표들[빵과 포도주]과 함께 성사의 실재(res,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는다. 외적인 증표들은 입을 통해서 위장으로 들어가고, 성사의 내적인 은총은 오직 신앙으로만 먹게된다[먹는다].

    빵과 포도주는 성찬기도에서 이것들에 대한 축성을 통해서 하나의 성사가 된다. 그러나, 성사의 목적은 오직 영성체[성찬배수]라는 행동에서 달성되기 때문에, 축성은 영성체에서 성찬요소들[빵과 포도주-역자]의 ‘사용’(용도use)과 분리되지 않는다. 즉,

    ‘찰스시대의 모든 신학자들은 축성을 영성체라는 거룩한 사용을 위하여 따로이 분리하는 것을 의미하였다는 점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이는 당시의 로마교회의 입장과는 분명하게 대조되었다. 로마교회의 입장은 축성을 성찬요소들의 본질에서 객관적인 변화를 야기시키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후커는 이미 축성을 ‘사용을 위하여 격식[의식]을 차린 축복기도(solemn benediction)로 성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이해는 중세기 교회의 이해-축성은 제정사의 낭독으로 발생한다-와는 달리, 축성이 성찬기도의 낭독으로 일어난다는 초기교부들의 이해(patristic notion)를 복원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의 현존을 신실한 성찬배수자들과 관련시키는 주제는17세기 성공회 성찬례사상에서 지배적었지만, 그렇다고 성찬례신학에서 유일한 주제는 아니었다. 16세기의 논쟁적인 상황의 퇴조와 초기교부들에 대한 새로운 연구들로 인하여, 신학자들의 저서들에서 성찬례의 희생적 측면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즉, 성찬례는 십자가의 구원적인 희생에 결코 어떤 것도 추가하지 않으면서도 ‘기념적인’(commemorative) 또는 ‘상징적인’(representative) 희생[제의]으로 묘사되었으며, 어거스틴이 강조하였던 성찬희생(Eucharistic sacrifice)의 교회론적인 차원(ecclesial dimension)이 다시 제기되었다. 랜슬럿 앤드류스의 장례식에서 존 버커리지(John Buckeridge)의 설교에는 이러한 어거스틴적인 강조를 완전하게 표현한 아름다운 본문이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봉헌하였던 그 분의 제대였듯이, 교회는 [...]오직 기념례로만 하는 머리이신 그리스도가 아니라 신자들인 그리스도(Christ the members)를 봉헌하는 제대를 갖는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단 한번을 제외하고는 진실로 그리고 정당하게 더이상 봉헌될 수 없기 때문이다 [...] 따라서 이것은 성 어거스틴의 확고한 판단에서 교회가 매일 드리는 희생 즉, 그리스도의 자연적인 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보편적인 몸(universal body)인 [그리스도의] 교회이다. 그 안에서 성사는, 이미 입증되었듯이, 하나의 본보기이자 기념례일 뿐이다. [...] 따라서 우리는 성서와 교부들에 의해서 보증된 [그리스도의] 교회가 매일드리는 희생 즉, 교회 그 자체라는 것을 아니라고 부인할 수 없다.’

    우리는 [앞에서 이미] 잉글랜드교회[성공회]의 성찬례교리의 특징은 빵과 포도주의 성사적인 증표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실재적으로 먹는 교리라고 설명하였다. 성찬례에 대한 이러한 ‘배수자 중심’(receptionist)의 이해는 실재적인 현존의 한 교리이지만, 현존을 빵과 포도주라는 성찬요소들과 관련시키기 보다는 근본적으로 신실한 배수자들과 관련시키는 실재적인 현존의 교리이다. 그러면, 잉글랜드교회[성공회]의 성찬례교리에서 이러한 특징적인 강조점은 왜 발생하였는가?[무엇때문에 그렇게 되었는가?]

    중세기 동안에 축성의 행동과 영성체의 행동은 점차적으로 분리되었으며, 따라서 성찬례의 목표는 신자들의 영성체보다는 실재적인 현존의 생산이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성찬의 배수보다는 제병(host, 성체)의 경배(adoration 예배)에 집중시키는 성찬례 신심을 낳았다. 중세신학에서 이러한 변화는 곧 성찬요소들에서 나타나는 그리스도 현존의 방식에 대한 질문에 집중하였다. 크랜머 이후로 잉글랜드교회[성공회] 신학자들은 성찬례신학을 그러한 중세적인 인식에서 벗어나 축성행동과 영성체행동을 재결합시키는 과제(project)에 몰두하였다. 이 신학자들에게 성찬례의 목적은 실재적인 현존의 생산이 아니라,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양육(육성nourishment)이었다. 실재적인 현존은 이들의 사상의 초점이 아니라 전제조건이었다. 즉, 성찬요소들의 축성은 그 자체로 목적으로 간주되지 않고, 영성체 행동을 위한 것으로 재정립시켰다. 즉, 그리스도는 성찬례에서 제대위에 있는 물체(object대상)로 현존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생활을 양육하는 영[성]적인 음식과 음료로서 현존한다. 현존의 방식의 경우, 그들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성사적인 현존과 전달(communication)을 은총의 질서(상태order of grace)에서 나타나는 한 사건으로 이해하였다. 바로 이 점때문에 그들은 화체론을 거부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화체론을 그리스도가 제대에 지리적으로(locally한 장소에 국한하여) 또는 물질적으로 현존한다는 성찬례 현존에 대한 자연주의적인[물질주의적인 naturalistic] 해석으로 이해하였다. 반면에 이들 성공회 신학자들은 성찬례에서 그리스도의 현존을 물질적인 세계에서 나타나는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제공되지만 살아있는 신앙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만이 받을 수 있는 은총속의 현존(presence-in-grace)으로 이해하였다. 여기서 성찬요소들은 그리스도의 현존을 신실한 배수자들에게 전달하는데 유익한(instrumental) 역할을 한다. 이는 기계적인 방식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은총과 신앙의 관계의 자유[은총-신앙 관계의 자유] 안에서만 발생한다.

    이 모든 주장들에 대해서 잉글랜드교회의 고교회파와 온건파들은 이러한 가르침의 공통적인 요소를 공유하였다. 초기 성공회의 고교회파 전통은 성사적인 영성과 이에따른 전례적인 이상들에서 온건한 성공회신앙과 구별할 수 있지만, 성찬례신학의 분야에서 분명한 구별을 찾기란 불가능하지는 않다 하더라도 매우 어렵다. 이런 점에서 리처드 벅스턴에 의하면, 이 두가지 이해의 차이는 17세기 전반기의 기본적인 입장내의 차이들’을 반영하는 것으로, 교리보다는 신심의 차이에 가까웠다.

    성찬례 생활과 사상에 대한 두가지 부흥운동[복원운동revival]은 18세기 후반기와 19세기 전반기에 각각 발생하였다. 첫번째는 존과 찰스 웨슬리 형제의 복음주의 부흥운동(Evangelical Revival)이었으며, 두번째는 옥스퍼드운동이었다. 웨슬리 형제의 부흥운동이 복음주의 부흥운동 만큼이나 성찬례 부흥운동이었다는 사실은 오늘날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웨슬리 형제의 특징(genius)은 그들이 이해하였던 그리스도교의 성사적인 비젼과 복음주의적인 비젼 사이의 통일성 (unity)에 있다. 웨슬리 형제의 성찬례신학은 찰스와 존이 만든 166개의 성찬례 찬송가 모음집에서 가장 분명하게 표현되었으며, 이 찬송가들은 성사주의 (성찬중심주의sacramentalism)와 기쁨에 찬(joyful) 복음[주의]적인 체험(Evangelical experience)을 결합시켰다.

    이 찬송가들의 신학은 17세기 성공회신앙의 성찬례교리를 반영하였다. 이 찬송가집[Hymns on the Lord’s Supper, 1745-역자]은 다니엘 브레빈트(Daniel Brevint)의 논문인 <The Christian Sacrament and Sacrifice>(그리스도교 성사와 희생)의 초록[요약글]을 서문으로 수록하였다. 브레빈트는 17세기 성공회 저술가[신학자]로, 그의 논문은 다른 17세기 성공회 저술가들과 다른 점이 없었다. 그의 논문의 특이점은 그 범위와 균형감, 그리고 초기[이전의] 성공회[잉글랜드교회] 전통에서 분명하게 표현되지 않았던 성찬례 주제들[종말론적 측면과 희생적 측면-역자]의 복원이었다.

    브레빈트에 의하면, 성찬례에는 세가지 근본적인 측면들이 있다. 즉,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측면. 무엇보다도 성찬례는 그리스도의 구원적인(saving) 죽음의 기념례(memorial)이다. 둘째로, 성찬례는 가치있는 배수자들을 위한 현재의 은총이자 자양물(nourishment)이다. 세째로, 성찬례는 약속된 하느님의 나라의 생활에 대한 우리의 참여를 보증하는 표시이다. 브레빈트는 성찬례의 희생적인 측면을 초기의 성공회 저자들보다 더 완전하게 설명하였다. 그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은 과거에 모든 인간을 위하여 단 한차례 발생하였으며 또다시 반복될 수 없으며, 이 희생으로 죄를 완전히 보상[속죄atone]하였다고 분명하게 이해하였다. 그러나 성찬례는 세가지 의미에서 희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첫째로 성찬례는 기념하는(commemorative) 희생이다. 둘째로, 어거스틴을 따라서 성찬례는 머리[그리스도]와 하나된(union) 교회의 희생이다. 세째로, 그리스도는 영원한 대사제(High Priest)로서 그리스도는 천국의 성부 앞에서 자신이 완성한 십자가희생을 우리들을 받아들이는 근거로 지속적으로 제시한다. 성찬례에서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념할 때, 교회는 과거의 행동을 기념할 뿐만아니라, 이제 지상의 그리스도인들은 천국에서 자신이 완결한 희생을 영원히 탄원하고 있는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다. 웨슬리 형제의 성찬례 찬송집은 브레빈트의 논문에 있는 이러한 주제들을 매우 밀접하게 따르면서, 17세기 성공회의 성찬례 전통의 핵심 주제들을 그들의 복음주의 추종자들에게 전달하였다.

    19초에는 웨슬리 형제의 부흥운동을 뒤따라 옥스퍼드운동이 발생하였다. 웨슬리 형제는 성공회신앙의 복음주의적인 유산을 강조한 반면에, 소책자운동가들은 성공회신앙의 가톨릭(Catholic 공교회적인) 유산을 강조하였다. 그들은 가톨릭 유산의 핵심으로 성사생활과, 가톨릭예배의 중심으로 성찬례를 강조하였다. 옥스퍼드운동의 영향을 받은 전도구교회들은 점차적으로 성찬례의 거행에서 가톨릭 의식들과 전례복들을 복원하였다. 이 운동의 의례주의(riualist) 단계에 이르러 종교개혁 이전의 의례들이 복원되거나, 당시의 로마 가톨릭교회의 관행[의례활동practice]들이 도입되어 교회당국과의 의례전쟁(ritual battle)을 야기시켰다. 옥스퍼드운동의 영향은 앵글로-가톨릭의 부흥(revival)을 넘어 세계성공회 공동체 전체에 성찬례 예배의 중심성을 매우 크게 강조한 영향을 남겼다.

    소책자운동가들은 그들의 성찬례신학에서 이전의 성공회전통보다 그리스도의 실재적인 현존과 성찬요소들을 더욱 밀접하게 연결시켰다. 소책자운동가들은 그리스도의 지상의 몸, 부활한 몸, 그리고 성사적인 몸 사이를 완전하게 일치시켰다. 유일한 차이점은 현존의 방식 또는 형식이었다. 소책자운동가들은 그리스도의 성찬례 현존을 이전의 성공회 신학자들보다 더욱 밀접하게 성찬요소들과 연결시키면서도, 현존의 방식이 육체적이거나 특정한 장소로 제한시키는 것(local)이 아니라 영적이라는 점(spiritual)에서 이들과 완전히 일치하였다. 성찬례에서의 현존은 은총의 상태[질서]에서의 현존(in the order of grace)이지, 자연(nature)의 상태에서의 현존이 아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성찬례에서 구체적인 방식으로 즉, 성사적인 증표들(sacramental signs)에 의해서 현존한다.

    여기까지 강조점의 차이를 제외하고는 이전의 17세기 성공회 저술가들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을 근본적으로 넘어서는 것은 없다. 그러나 소책자운동가들은 성찬요소와 관련된 그리스도의 현존과 가치있는 배수자와 관련된 그리스도의 현존 사이를 분명하게 구별하였다는 점에서 이전의 성공회 신학자들을 결정적으로 이탈하였다. 소책자운동가들의 가르침[주장]에 의하면, 성찬요소들과 관련된 그리스도의 현존은 축성행동에 의해서 발생하며[객관적-역자], 영성체에서 가치있는 신자들의 성찬배수에 의존하지 않는다. 이러한 입장은 R. I. 윌버포스(Wilberforce)에 의해서 가장 분명하게 신학적으로 표현되었다. 윌버포스는 이전의 성공회 저술가들처럼 성사의 실재(res)와 상징(sacramentum) 사이를 구별하였을 뿐만아니라, 성사의 실재(res)와 효능(virtus능력) 사이를 구별하였다. 성사의 실재(res)는 외적인 상징들에 의해서 전달되는 실재(reality) 즉, 그리스도 자신[을 말한다]이다. 성사의 효능(virtus)은 신앙으로 성사를 받는 모든 자들에게 그리스도가 주는 축복, 효과 또는 은총이다[은총을 말한다]. 실재(res)와 상징(sacramentum)의 결합은 축성에 의해서 발생된다. 즉, 축성후에 그리스도는 성찬요소들과 관련하여 객관적으로 현존한다. 그러나 실재(res)와 상징(sacramentum) 사이의 이러한 결합은 성사적인 결합(sacramental union)으로, 물질적인 세계에서 객체[물체]로 현존하는 것이 아니다. 즉, 그리스도는 성찬요소들에서 물질적인 또는 자연적인 형태으로 현존하는 것이 아니라, 성사적인 형태(sacramental mode)로 현존한다. 따라서 성사의 실재 또는 res는 배수자들의 신앙에 관계없이 모든 배수자들에게 성사적인 상징들로 제공된다. 그러나 신앙으로 성사를 받는 자들만이 성사의 효능(virtus) 또는 은총을 받는다. 성사의 실재와 효능 사이를 구별하는 목적은 그리스도가 축성에 의해서 성찬요소들에 객관적으로 현존하지만, 신앙으로 그리스도를 받는 자들에게만 은총으로 현존한다는 점을 분명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는 성찬요소에서 그리스도 현존의 객관성을 보장하기 위한 조치이다-역자]

    20세기에 전례에 관한 연구의 발전들과 전례운동은 성공회신앙의 예배와 성찬례생활에 광범위한 변화들을 야기시켰으며, 최근 몇십년동안 세계성공회 교회들의 전면적인 전례서개정 활동으로 연결되었다. 교회일치운동과 그 신학의 발전들은 성찬례에 대한 성공회의 이해에도 영향을 끼쳤다.

    영국성공회에서 전례운동은 사회정의에 대한 신앙인의 책임 그리고 사회에 대한 교회의 선교라는 상황에서 신자들이 전례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요구하는 운동으로 시작되었다. 이 운동은 A. G. 허버트(Herbert)의 두 책인 <Liturgy and Society>(전례와 사회, 1935) <The Parish Communion>(전도구교회의 성찬예배, 1937)의 출판으로 커다란 추진력을 얻었다. ‘전도구교회의 성찬예배’를 위한 제안은 주일 아침의 중심적인 예배행동을 신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감사성찬례[성찬예배] 노래예배를 주일예배의 중심적인 행동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이는 세계성공회 전반에서 성직자들의 성향에 관계없이 전도구[지역]교회들로 널리 확산되었다.

    성공회신앙에서 전례연구와 전례서 개정활동은 토마스 크랜머 대주교의 노력으로 시작되었다. 크랜머는 직접 기도서를 개정하였으며, 그리고 성공회의 역사를 통해서 다양한 개정활동이 실행되었다. 성공회의 전례연구는 17세기에 매우 활발히 진행되었으며, 19세기말과 20세기초에 이러한 전통은 유명한 전례학자들인 W. H. 프리어(Frere), F. C. 브라이트만(Brightman), E. C. 레트클리프(Ratcliff)의 저서들에서 계속되었다. 20세기에 성공회 전례연구들중 가장 영향력이 컸던 연구서는 그레고리 딕스의 <전례의 구성[구조]>(The Shape of the Liturgy, 1945)이었다. 딕스의 저서는 세계성공회의 모든 전례서 개정활동에 극히 중요한 영향을 남겼다. 그의 논제[명제, 이론]는 성찬례가 본질적으로 4가지 구성[요소들]로 된 행동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4가지 행동들은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가 빵과 잔을 ‘잡고’(taking) ‘축복하며’(감사하며blessing) ‘나누고’(breaking) ‘주는’(giving) 행동들에 해당한다. 이 4가지 행동들은 성찬례 전례에서 봉헌(Offertory), 성찬기도, 성체분할(Fraction)(빵의 뗌), 그리고 영성체(Communion)에 해당한다. 딕스는 이 4가지 행동들이 초기교회의 성찬례 양식들에서 어떻게 표현되었는지를, 그리고 중세시대와 종교개혁시대에 어떻게 가려지고 왜곡되었는지를 설명하였다. 딕스의 책이 출판된 이후 개정된 세계성공회의 모든 성찬례 전례서들은 전례의 구성에 대한 그의 강조점이 끼친 영향을 잘 보여준다.

    전체적으로 양식의 구성에 대한 강조와 함께, 성공회 성찬례 양식들의 개정활동에서 주요한 관심사는 성찬기도의 고전적인[초기교회] 구조를 복원하는 것이었다. 20세기에 일어난 성찬기도의 기원들과 역사에 대한 연구는 성공회의 전례서 개정에 주요한 역할을 하였다. 성찬기도의 전통은 분명하게 유대교의 모델들(models), 특히 유대교의 축복과 감사의 식탁기도들(berakoth), 그리고 특징적으로는 식사끝에 하는 잔에 대한 감사기도(birkat ha-mazon)에서 유래하였다. 그러나 정확한 유래는 제한된 증거로 인하여[증거의 부족으로] 확실하게 규정할 수 없다. 초기교회의 성찬기도들의 특징적인 구조는 (창조와 구원에 대한) 감사기도와 그 직후의 간구[탄원]기도(supplication)-후에 성령임재에 대한 에피클레시스로 발전한다-였다. 세계성공회 교회들에서 최근에 개정된 성찬례 양식들은 이러한 기본적인 구조를 따르면서 단어들과 신학적인 강조점만을 조금씩 달리하며, 특히 영국성공회의 양식들에서는 에피클레시스의 위치를 서로 달리한다.

    교회일치운동과 이에 대한 연구들 또한 20세기 성공회 교회들의 성찬례 이해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이에 대한 두가지 사례는 성공회-로마 가톨릭교회의 <Agreed Statement on Eucharistic Doctrine>[성찬교리에 대한 합의문] 그리고 세계교회협의회의 신앙과 직제위원회에서 발표한 <셰례, 성찬례, 그리고 사목직> [세례, 성만찬, 사역]이라는 문서이다.

    성공회-로마 가톨릭교회의 <합의문>은 실재적 현존과 성찬례의 희생[성찬희생]의 문제들을 논의하였다. 이 합의문은 후커를 연상시키는 언어로 성찬례의 목표를 ‘그리스도와의 상통(communion)’ [영성체]이며, 이는‘그리스도의 진정한 현존을 전제한다’고 인정하였다. 성찬요소들에 관하여, 그리스도의 실재적 현존은 ‘이 신비에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는 빵과 포도주에 의해서 효과적으로 전달된다[알려진다].’ 이러한 현존은 ‘자신의 교회에 주는 주님의 참 선물이 되기 위하여 개개인의 신앙에 의존하지 않는다.’ 그러나 오직 신앙으로 배수함으로써만 ‘생명을 주시는 만남이 발생한다’.

    이 문서는 그리스도의 희생과 성찬례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는 열쇠로 성찬례의 기념(eucharistic memorial)에 대한 이해을 이용하였다. 즉, 성찬례는 십자가의 희생의 반복이 아니며, 또한 2천년전에 일어난 사건에 대한 단순한 정신적인 회고도 아니다. 오히려 성찬례의 기념은 과거에 단 한차례 모든 인간들을 위하여 발생하였던 사건들의 구속적인[구원적인] 실재를 현재에 ‘유효하게[유효한 것으로] 선포하는 것’이다. 성찬례의 기념을 통해서 십자가의 희생은 성사적으로 현재화되며, 따라서 우리는 현재에 십자가의 구속[원]적인 실재에 참여할 수 있다. 이 문서는 종말론적인 기대-즉, 성찬례의 의미를 하느님나라의 잔치를 미리 맛보는 것이라고 강조한다-로 끝맺었다.

    성찬례에 관한 성공회-로마 가톨릭교회의 합의문은 20세기에 진행되고 있는 교회일치운동에서 성찬례에 관한 여러 합의문들중 하나였다. 교파교회들 사이의 양자대화들을 통해서 이와 비슷한 여러가지 합의문서들이 발표되었다. 이 모든 문서들은 1982년 페루의 리마에서 개최된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신앙과 직제위원회에서 공식적으로 벌표한 <세례, 성찬례, 그리고 사목직>(BEM)이란 문서를 만드는데 기여하였다. 이 문서는 참여한 교파교회들 사이에 세례, 성찬례, 그리고 사목직에 대한 신학적인 합의를 표현한 것이었다. 성공회는 BEM의 공표까지 신학적인 토론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BEM은 성찬례를 5개의 항목으로 설명하였다. 즉, 감사, 기념[억], 성령청원, 영성체, 그리고 하느님나라에서의 식사에 대한 기대. 오늘날 성공회의 개정된 전례서에서 성찬례의 감사적인 성격은 크랜머 양식들의 특징인 참회적인 성격과는 대조적으로 창조와 구속에 대한 찬양과 감사를 공동체적인 행동으로 거행하도록 강조한다. 그리스도의 희생과 성찬례와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성찬례 기념의 중심적인 역할-성공회-로마 가톨릭교회와의 합의문서에서도 나타난다-은 마찬가지로 BEM과 최근에 개정된 성공회의 성찬기도들에서도 입증된다. 성찬례 거행에서 성령의 역할-오랫동안 동방교회들에서 강조되고 있다-은 이제 현대 성공회의 전례 양식들에서 에피클레시스의 복원으로 반영되었다. 성공회신앙은 오랫동안 성찬례를 ‘거룩한 상통[영성체]’(Holly Communion)으로 강조하였다-그러나 딕스의 지적처럼 대부분의 경우 개인주의적인[개별적인] 의미에서. 20세기들어와 성공회신앙에서 성찬례에 대한 새로운 강조점은 개인적인[인격적인] 영성체 행동일 뿐만 아니라, 참여한 모든 신자들이 그리스도와의 상통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에서 신자들 서로간의 상통함으로써 형성되는 공동체 전체의 예배(corporate community celebration)로 이해하는 것이다.

    하느님 나라에서의 식사에 대한 기대에 대한 강조는 성공회신앙에서 경시되었던 측면으로, 오늘날의 개정기도서들,특히 새로운 성찬기도들에서 나타나고 있다. 종말론적인 기대는 신약성서에 나타나는 최초의 성찬례 전통들중 하나이다. 이 주제는 이후의 전통에서 실재적인 현존과 희생의 주제들이 무대중심을 차지함에 따라 경시되었지만, 오늘날에 다시 복원되고 있다. 이러한 전망은 정의에 대한 주제와 분명하게 연결된다. 다가오는 하느님의 통치를 기대하며 거행하는 식사는 하느님나라의 약속에 근거한 새로운 사회적인 비젼을 제시한다. 이러한 비젼은 현 사회의 현상태에 도전하며, 현재를 지배하는 경제적 사회적 관계들에도 도전한다. 공동체 식사에서의 나눔(sharing)은 정의와 사랑속에서 창조의 모든 선물들에 대한 공정한 공유를 기대한다. 그러므로 성공회-로마 가톨릭교회의 합의문서와 BEM은 성공회교회들 내에서 나타나고 있는 성찬례의 이해와 거행에 대한 변화들을 반영하며, 또한 성공회 신자들에게 우리의 전통에서 경시되었던 강조점들을 포함할 것을 요구하였다.

    성공회의 성찬례 전통은 전례서의 개정으로 시작하였으며, 그후에야 성찬례에 대한 교리적 신학적 숙고의 전통을 형성하였다. 20세기에 세계성공회의 전례적인 변화는 성공회의 성찬례 생활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세계성공회의 여러 교회들에서 시작된 전례서 개정활동은 성공회의 성찬례 인식을 새로운 신학적인 숙고를 요구하는 새로운 방식들로 형성시키고 있다. 성공회신앙의 사회적 문화적 상황은 19세기 이후로 급격하게 변화하였다. 세계성공회는 이제 더이상 영국의 문화를 반영하지 않으며, 이제 다양한 문화적 사회적 상황들을 반영하는 현지교회들의 공동체이다.

    1995년 가을 더블린에서 개최된 세계성공회 전례협의회(IALC) 회의는 성찬례를 모임의 주제로 다루었다. 협의회의 목적은 감사성찬례 양식들을 개정과 갱신(renewal)하려는 단계에서 세계성공회의 각 교회들을 지원할 수 있도록 원리들과 권고사항들을 찾으려는 것이었다. 협의회는 성찬례가 전체 신앙공동체의 행동이며, 성찬례 거행때의 여러가지 역할들은 세례때에 받은 사목직에 대한 다양한 선물들에서 나온다고 강조하였다. 협의회는 미래에 성공회의 전례적인 정체성은 공통된 본문의 사용보다는 공통된 구조일 것이라고 예견하였다. 이러한 공통된 구조는 다음의 구성요소들을 포함한다. 즉, 공동체의 소집, 하느님의 말씀의 선포와 이에 대한 응답, 신자들의 기도, 빵과 포도주에 대한 감사기도와 영성체, 그리고 하느님의 백성을 세상으로 파송하기. 이러한 보다 넓은 구조 안에서 ‘성찬기도의 근본적인 성격’은 ‘감사이며, 성찬기도 전체는 축성[문, 의식](consecratory)으로 이해되어야 하며, 기억[아남네시스-역자]과 청원[에피클레시스-역자]의 요소들은 감사의 움직임[동적인 변화안에 포함된다’. 협의회는 이러한 공통적인 구조들이 세계성공회 각 관구들의 문화적인 전통의 특징을 반영한 다양한 상징들과 언어와 의례들을 채택하여 문화화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였다.

    참고문헌

    Cumming, G. J., A History of Anglican Liturgy, 2nd edn. Macmillan, London, 1982.

    Crockett, William R., Eucharist: Symbol of Transformation. Pueblo Publishing Co., New York,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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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cAdoo H. R. and Stevenson, K., The Mystery of the Eucharist in the Anglican Tradition. The Canterbury Press, Norwich, 1995.

    Holeton, David R. (ed.), Our Thanks and Praise: The Eucharist in Anglicanism Today. Anglican Book Centre, Toronto, 1998.

    Perham, M., Lively Sacrifice: The Eucharist in the Church of England Today. SPCK, London, 1992.

    Wainwright, G., Eucharist and Eschatology. Epworth Press, London, 1978.

    2012년 7월 1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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